Name:
구운은행
Role:
Novel
처음부터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는 것과 그것을 인정하는 것은 다른 일이기 때문에.
*
지난 금요일에는 출석 대신 미술관에서 하는 전시를 보러 갔다. 벌써 지루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반 아이들의 표정을 보며 피실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얼른 전시관을 전부 돌고 이 시간이 끝나면 농구나 하러 가고 싶었다. 앞서 걷는 기정이도 같은 마음인지 눈동자가 죽어있었다.
잘 꾸며진 전시장에서 묘한 위화감을 느꼈다. 제자리에 곱게 걸려있는 그림과 은은하게 풍겨오는 어딘가 좋은 향기 같은 것들. 언제나 지저분한, 땀내 나는 체육관과는 영 딴판인 이곳은 그래서 어쩌면 영영 나와 같은 사람들은 속하지 못 할 세계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해진 화살표 대로 전진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어쩐지 한 방향으로 흐르는 강물 처럼 보여서 그 모습을 담고 싶었다. 어쩐지 우스우면서도 가라앉는 기분에 찍은 영상을 한참 들여다보았다.
1관과 2관의 관람을 끝내고 드디어 마지막 관인 3관에 들어섰다. 거기엔 아주 커다란, 마치 게오르그 무레산(키 231cm의 NBA 선수)을 다섯 이상 쯤 목마를 태워도 닿지 못할 불화가 걸려있었다. 중앙의 부처님과 그 옆을 자리하고 있는 무수한 존재들. 왠지 모르게 압도되는 기분이었다. 문득 고개를 돌려 옆을 바라 보았다. 언제 지루해 했냐는 듯, 기정이는 그림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조용히 일렁이는 눈동자를 보며 나는 언젠가 보았고 이제는 마주치기 어려워진 코트 위에서의 기정이의 눈을 떠올렸다. 이 그림이 그렇게 마음에 드는 건가? 어딘지 모를 불쾌감에 눈을 감고 고개를 저었다. 기정이의 옆모습을 꼭 훔쳐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얼굴이 화끈거렸다. 뱃속이 울렁이는 이 기분을 들킬까 초조했다. 이 모든 사실들을 그림 속 부처님이 꿰뚫어 보고있다는 느낌에 참을 수 없는 감각이 온 몸에 퍼졌다. 마침 전시 관람 시간이 끝났고, 나는 그대로 뒤돌아 집으로 달려왔다.
얼마 전부터 스터디 카페를 다니기 시작했다. 체육 교사가 되기 위해선 농구도 중요했지만 어떻게든 성적을 더 끌어올려야 했다. 지루한 수학 문제와 씨름하며 머리를 싸매고 괴로워 할 때마다 내가 농구를 조금만 더 잘했더라면 하고 혼자서 생각하곤 했다. 코트 위에서의 나를 생각하면 자연스럽게 김기정이 떠오른다. 그날 이후 그 애는 미술을 하겠다는 청천벽력 같은 선언을 농구부에 던졌다. 울컥 목구멍을 치고 올라오는 말 대신 나도 모르게 주먹을 날렸다. 금방 후회했다. 그렇게 해결되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면서. 내게 없는 것을 가지고도 최선의 선택을 하지 않는 그 애가 미웠다. 내내 농구를 같이 하며 기정이와 함께 뛸 수 있단는 게 좋았다. 좋아하면서 동시에 미웠고 미우면서 동시에 사랑스러웠다. 그 모든 감정이 같은 사람에게서 비롯된다는 것이 신기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마치 예정되어있던 것 처럼 우리는 멀어질 테다. 언제까지고 붙어있을 수 없다는 걸 알고 있다. 그렇지만 그 시간을 조금만 더 유예할 수는 있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 또 괜스레 미움이 솟아 올랐다. 누가 먼저였는지는 생각나지 않지만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서로 마주칠 때마다 아무런 말을 하지 않은 채 목례만을 나누기 시작했다. 아까운 시간을 그렇게 허비하고 있었다. 치기 어린 마음을 굽히지 못해서.
실은 어제 경기가 끝나고 패배를 했음에 안도했다. 졌기 때문에 나는 나를 내려놓고 똑바로 볼 수 있었다. 농구를 많이 좋아했다는 기정이의 말에 눈물이 쏟아졌다. 나도 안다. 기정이가 농구를 좋아한다는 거. 그래서 괴로웠다는 거. 그래도 나랑, 우리랑 더 같이 있고 싶었다는 걸 나도 안다. 언제나 늘 그애와 나는 다르면서도 같은 마음이니까.
아까 점심을 먹고 미술실에 찾아갔다. 아무말 없이 캔버스 위에서 붓을 움직이는 기정이는 고요하고 편안해 보였다. 마치 그 불화 속 부처님처럼. 이전 만큼 자주는 아니지만 우리는 여전히 종종 마주치고 인사를 나누고, 시간이 흘러 길에서 우연히 마주쳐서 서로를 알아보면 이제는 주먹을 날리는 대신 얼싸안고 기뻐할 수 있을 것이다. 어찌되었건 기정이의 삶에 나는 중요한 무언가로 남았고 나는 그 사실만으로도 애틋한 무언가를 계속 가지고 갈 거라는 그런 예감이 들었다.
처음부터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는 것과 그것을 인정하는 것은 다른 일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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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금요일에는 출석 대신 미술관에서 하는 전시를 보러 갔다. 벌써 지루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반 아이들의 표정을 보며 피실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얼른 전시관을 전부 돌고 이 시간이 끝나면 농구나 하러 가고 싶었다. 앞서 걷는 기정이도 같은 마음인지 눈동자가 죽어있었다.
잘 꾸며진 전시장에서 묘한 위화감을 느꼈다. 제자리에 곱게 걸려있는 그림과 은은하게 풍겨오는 어딘가 좋은 향기 같은 것들. 언제나 지저분한, 땀내 나는 체육관과는 영 딴판인 이곳은 그래서 어쩌면 영영 나와 같은 사람들은 속하지 못 할 세계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해진 화살표 대로 전진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어쩐지 한 방향으로 흐르는 강물 처럼 보여서 그 모습을 담고 싶었다. 어쩐지 우스우면서도 가라앉는 기분에 찍은 영상을 한참 들여다보았다.
1관과 2관의 관람을 끝내고 드디어 마지막 관인 3관에 들어섰다. 거기엔 아주 커다란, 마치 게오르그 무레산(키 231cm의 NBA 선수)을 다섯 이상 쯤 목마를 태워도 닿지 못할 불화가 걸려있었다. 중앙의 부처님과 그 옆을 자리하고 있는 무수한 존재들. 왠지 모르게 압도되는 기분이었다. 문득 고개를 돌려 옆을 바라 보았다. 언제 지루해 했냐는 듯, 기정이는 그림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조용히 일렁이는 눈동자를 보며 나는 언젠가 보았고 이제는 마주치기 어려워진 코트 위에서의 기정이의 눈을 떠올렸다. 이 그림이 그렇게 마음에 드는 건가? 어딘지 모를 불쾌감에 눈을 감고 고개를 저었다. 기정이의 옆모습을 꼭 훔쳐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얼굴이 화끈거렸다. 뱃속이 울렁이는 이 기분을 들킬까 초조했다. 이 모든 사실들을 그림 속 부처님이 꿰뚫어 보고있다는 느낌에 참을 수 없는 감각이 온 몸에 퍼졌다. 마침 전시 관람 시간이 끝났고, 나는 그대로 뒤돌아 집으로 달려왔다.
얼마 전부터 스터디 카페를 다니기 시작했다. 체육 교사가 되기 위해선 농구도 중요했지만 어떻게든 성적을 더 끌어올려야 했다. 지루한 수학 문제와 씨름하며 머리를 싸매고 괴로워 할 때마다 내가 농구를 조금만 더 잘했더라면 하고 혼자서 생각하곤 했다. 코트 위에서의 나를 생각하면 자연스럽게 김기정이 떠오른다. 그날 이후 그 애는 미술을 하겠다는 청천벽력 같은 선언을 농구부에 던졌다. 울컥 목구멍을 치고 올라오는 말 대신 나도 모르게 주먹을 날렸다. 금방 후회했다. 그렇게 해결되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면서. 내게 없는 것을 가지고도 최선의 선택을 하지 않는 그 애가 미웠다. 내내 농구를 같이 하며 기정이와 함께 뛸 수 있단는 게 좋았다. 좋아하면서 동시에 미웠고 미우면서 동시에 사랑스러웠다. 그 모든 감정이 같은 사람에게서 비롯된다는 것이 신기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마치 예정되어있던 것 처럼 우리는 멀어질 테다. 언제까지고 붙어있을 수 없다는 걸 알고 있다. 그렇지만 그 시간을 조금만 더 유예할 수는 있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 또 괜스레 미움이 솟아 올랐다. 누가 먼저였는지는 생각나지 않지만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서로 마주칠 때마다 아무런 말을 하지 않은 채 목례만을 나누기 시작했다. 아까운 시간을 그렇게 허비하고 있었다. 치기 어린 마음을 굽히지 못해서.
실은 어제 경기가 끝나고 패배를 했음에 안도했다. 졌기 때문에 나는 나를 내려놓고 똑바로 볼 수 있었다. 농구를 많이 좋아했다는 기정이의 말에 눈물이 쏟아졌다. 나도 안다. 기정이가 농구를 좋아한다는 거. 그래서 괴로웠다는 거. 그래도 나랑, 우리랑 더 같이 있고 싶었다는 걸 나도 안다. 언제나 늘 그애와 나는 다르면서도 같은 마음이니까.
아까 점심을 먹고 미술실에 찾아갔다. 아무말 없이 캔버스 위에서 붓을 움직이는 기정이는 고요하고 편안해 보였다. 마치 그 불화 속 부처님처럼. 이전 만큼 자주는 아니지만 우리는 여전히 종종 마주치고 인사를 나누고, 시간이 흘러 길에서 우연히 마주쳐서 서로를 알아보면 이제는 주먹을 날리는 대신 얼싸안고 기뻐할 수 있을 것이다. 어찌되었건 기정이의 삶에 나는 중요한 무언가로 남았고 나는 그 사실만으로도 애틋한 무언가를 계속 가지고 갈 거라는 그런 예감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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